사극이나 역사 자료에서 사도세자 이야기를 접하면서 최근 치료 현장에서 경험한 사례들이 연상 되었다. 아주 영특한 아들을 데리고 내원한 어머니가 있었다. 조금은 오래된 이야기다.아들을 보니 이미 완전히 폐인이 되어 아무 희망도 야망도 없고, 살아갈 욕망을 잃은 채 가출은 일상이고 여름이면 밖에 공원 벤치에 누워서 시원하게 잠을 자고, 닥치는 대로 때 되면 먹고 사지를 늘어 트리고 들낙날락 하면서 사는 터였다. 어떤 계기로 심리치료를 받으러 왔는가 보니 아들이 이제 나이 18세에 고1 된 여고생을 임신 시켜 놓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눈물을 많이 흘리면서 울었다 첫째는 그 여학생이 불쌍하다고 했다. 둘째는 자신의 처사가 아들에게 지나쳤던 것을 한탄하면서 울었다. 이야기 끝에 초등학생인 둘째 아들이 경시대회 나가 상을 탔다고 해서 치료자는 너무 놀라서 정말 영특한 아이인가 보다고 했더니, 이 맏아들은 그 아이보다 몇 배 더 영리하고 눈이 초롱초롱 하고 비교도 안 되게 머리가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요?) 그래서 자기가 “큰애한테 너무 기대를 많이 했었다”고 했다.
기대 때문에 병이 된 케이스가 바로 사도 세자이다. 이조 대 21 대 왕 영조는 장남을 10살 어린 나이에 사별하고 42살이나 되어 늦은 나이에 낳은 사도세자가 특별히 영특해서 뛰듯이 기뻐했다. 세자는 학문적 소양도 뛰어나서,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신하들과 학문적인 토론도 즐겼다고 한다. 문장력도 뛰어나 많은 글도 남겼다. 그림 서예에도 능했고 부모를 기쁘게 해주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영특하다 싶으니 영조는 아들이 잘하면 더 잘해라, 기대를 채워주면 또 더 잘해라 더 더 더 기대치를 높혀 갔다. 영조는 자신이 신분이 낮은 무수리에게서 낳은 출신이라는 컴플랙스 때문에 세자에게 한없이 높은 엄격한 기준을 세워 놓고 완벽하게 키우고 싶어, 거기에 맞춰서 기대를 높이다 보니 나중에는 세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영조가 만족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그럼에도 더욱 더 가혹하게 대했다. 영조는 세자의 작은 행동까지도 자신의 높은 기준에 맞지 않을 때는 신하들 앞에서도 세자를 모욕하고 꾸짖고 나중에는 도저히 아버지 영조의 높은, 완벽한 기대를 채워줄 수가 없게 되면서 부자지간에 갈등은 고조 되었다. 영조의 기대는 한껏 높아져서 15살 나이에 대리 청정을 하면서 세자 뒷자리에 딱 버티고 앉아서 세자가 결정을 하면 왜 네 마음대로 결정 하느냐, 왕인 나를 무시하느냐며 세자뿐 아니라 옆에 신하들까지 두루 혼을 내고, 다음번에 사도세자가 결정을 못 하고 어찌 하오리까? 하면 그런 것도 혼자 결정 못 하느냐고 너를 대리 청정을 시킨 내가 보람이 없다, 고 하면서, 이러면 왜 이러느냐 하고 저러면 왜 저러느냐 하며 입만 열면 꾸중과 화만 내고 심지어는 날씨가 궂어서 비가 와도 다 ‘너 때문이야’ 라며 세자 탓이라고 도무지 아들은 아버지 왕의 욕구를 충족시킬 도리가 없다 사도세자 마음속에는 아버지 영조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싸이기 시작했다. 현대로 말하면 세자는 가족 중 소위 I.P. (Identified Patient)가 돼 버린다. 세자는 마음속 상처가 화가 되고 화는 싸이고 싸여서 주체를 못 하니 아버지를 향한 적개심만 나날이 축적된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적개심은 만만한 하인들에게 향하여 하루 한 명씩 죽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느날은 하루에 6명을 살해한다. 사람을 못 죽이면 짐승이라도 죽여야 속이 시원하다. 사람을 죽인다 하니까 그제야 영조는 세자를 불러 왜 사람을 죽이느냐? 고 물었다. 아들은 마음에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아버지가 사랑해 주기를 바라나 너무 아버지 사랑이 없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그렇게 한다고. 영조는 알았다고 앞으로는 잘 해주겠다고 했으나, 말뿐이었다. 어느 때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워서 그림으로 표현한 적도 있었다. 어미 개에게 강아지 두 마리가 다가가니까 어미가 귀찮아서 고개를 돌려버린 그림이었다. 아버지가 알아챌 리가 없다.
세자의 적개심은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지 못해서 아무나 죽이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살 것 같아서이다. 적개심이 밖으로 향한 것이다. 적개심이 자기 내부로 향하면 자살이 된다.
세자의 어머니 영빈이씨는 세자가 뱉은 말을 듣고 영조에게 전한다. 왕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라고 전해진다. 그래서 영조는 아들에게 자결할 것을 명한다. 결국 뒤주 속에 넣고, 8일이 지나 세자는 2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사도세자가 된 것이다. 아버지가 자식을 죽게 한 것이다. 사도세자는 죽어가면서 적개심이 자신으로 향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많이 잘못된 처사다. 너무 많이 잘못된 역사다.
병든 자식의 뒤에는 반드시 병든 부모가 있다. 영조의 병이 근본 문제다. 영조의 아버지 숙종에겐 정실 인현왕후와 왕의 총애를 많이 받았던 장희빈이 있고, 영조의 어머니 최씨는 출신 낮은 무수리 라는데 대한 심각한 컴플랙스(오직 한가지 개인적인 원인과 정치적인 당파 간의 암투가 함께 역사적 자료로 전해진다) 가 영조의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있는 그대로 티 없이 성장하고 또 자녀도 편안하게 키우면 될 것인데, 모든 인간은 자신의 피치 못 할 문제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산다. 술로, 도박으로, 또는 성 문제로, 아니면 신경증으로도 가지만 영조는 아들을 타겟으로 삼았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기대가 이렇게 무서운 것을 사뭇 깨닫는다. 부모 자식이 서로 지나친 기대를 한 결과 정신적 갈등이나 정신질환이나 노이로제 정도를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새삼 중용 이란 진리가 얼마나 중요한가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