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INDULGENCE (응석받이)
노이로제 정신병에 걸리는 사람 중에는 사랑을 못 받았거나 부족했거나 거부, 배척, 학대당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임을 종종 보는데, 그래서 아이들에게 사랑을 되도록 많이 주어야 하고 사랑 칭찬 인정을 많이 받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면 사랑 인정 칭찬을 무조건 많이 해주는 것이 잘하는 것일까?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다 건강하고 좋기만 한가?
묘하게도 지나치게 사랑을 많이 받았음에도 사랑을 못 받고 거부 받은 사람과 똑같이 병이 되는 것을 경험 했었다. 폐쇄병동에 입원한 여자 환자와, 같은 병동에 입원한 남자 청년이 서로 연애를 하는 바람에 주목을 받게 된 사례가 있었는데, 이 두 사람 중 남자 청년의 경우는 너무 지나치게 사랑을 받아서 자기중심적이고 성격장애가 된 케이스였다. 실제로 “너는 사랑도 많이 받고, 남 부러울 것 없이 일류대학도 나오고, 부모님이 극진히 잘 해주셨는데 왜 그렇게 고통스럽고 불만 스러운가?” 라는 질문을 했을 때 그는 “나를 이렇게 키운 부모가 원망스럽다.” 하며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내었다. 내 담당 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다.
자식이 너무 소중하고 예쁜 나머지,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거 생각지 않고 계속 비위 맞춰주고,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 돈 달라면 다 주고, 애기 취급하다가는 그 상태에 머물러 자라지 못해서 친구 틈에 끼지 못하고 학교생활 친구 관계 등 사회적응이 힘들어진다. 아이가 커서 세상에 나가면 세상은 어머니, 아버지처럼 해주지 않는다. 세상은 gimme-gimme world (give me give me) 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사회 적응이 안 되면, 친구 관계가 안 되고, 동성 친구 관계가 안 되면 이성 친구 관계가 안 되고, 이성 친구 관계가 안 되면 결혼을 해도 살기가 힘들다. 사랑은 적절한 만큼 주는 게 좋다. 적절한 사랑은 얼마만큼 일까?
고등학교 학부모회에서 강의를 하다보면 이런 설명을 듣고 난 후, 사랑을 얼마만큼 주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적절한 사랑은 숫자로 얼마만큼 이라고 표시할 수는 없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사랑을 주면 된다. 불필요한 사랑, 지나친 사랑을 줄 때 그 사랑은 독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의 발달단계마다 과업(developmental task)에 따라 부모도 아이들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성장 과정에서 아이를 아기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숙하고 있는 아이로 대할 때 성숙한 인간이 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질 줄 아는 독립된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그때 그때의 과업을 실천할 줄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실제 사례를 하나 든다. 이 어머니는 아들이 너무 귀해서 지나친 사랑을 주었다. 초등학교 내내 화장실 가서도 닦아주었고, 4 학년 까지 업어주고 너무 아기처럼 키웠다. 아들은 초등학교 다니면서 내내 왕따를 당하였고 중학교 가서도 부적응이었고, 고등학교 3학년 이 되자 결국 자퇴를 하고 군대를 지원 했으나, 군에서도 탈락해서 집으로 돌아와 정신치료를 받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응석받이로 키웠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응석받이 캐이스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모든 것을 무의식적으로 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