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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08 12:32
카프카와 아버지
 글쓴이 : 김연
조회 : 11,834  

프란츠 카프카는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¹ 에서 “사랑하는 아버지, 최근²에 아버지는 제게 왜 아버지를 무서워하는지, 도대체 그 까닭이 뭐냐고 물으셨을 때, 저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이기도 하고 또 설명 하자면 여러 가지 사소한 점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겠고....... 그래서 지금에야 아버지께 대답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첫 문장을 시작한다.

즉 카프카는 아버지가 너무나 무서워서, 묻는 말에 대답도 못 할 지경이었고 그 이유 설명은 더더욱 할 수가 없을 만큼 아버지가 무서웠다.

카프카의 핵심감정³ 은 무서움이고 그 파생채로 두 번째 핵심감정 죄의식이 올라온다. 즉 그의 평생을 지배했던, 그의 인생을 좌지우지 했던, 항상 느꼈던 감정은 무서움, 죄의식이었다. 우선 그 무서움, 공포의 유래(source)를 보면 다음과 같다

카프카의 어린 시절 기억으로는, 그가 2, 3 세 때, 자다가 일어나 칭얼대면서 물 달라고 했던 기억이다. 그 때 몇 번인가 심하게 꾸짖음을 당하고도 계속 보채자, 아버지는 카프카를 번쩍 안아 밖의 마루(발코니)로 내 쫓아서 속옷 바람으로 세워 놓았던 것이 그의 첫 기억 인 듯하다. 그 이전 기억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그 때 기가 죽었고, 기가 꺾였던 당시 상황에 대하여

“저는 그 때 이후로 아주 얌전해진 모양입니다만 그로 인하여 저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완전히 입을 다물고 만 것입니다.” 라고 기록 하고 있다.

그는 그 나이에 특별한 이유 없이 물 달라고 징징대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 일로 곧바로 마루로 끌려 나가고, 말할 수 없는 무서움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은 자기로서는 이해불가능하다. 그 후에도 여러 해동안 거인 같은 남자, 즉 아버지가 밤중에 느닷없이 나타나서 자신을 침대에서 끌어내서 긴 발코니로 떠메고 나갈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에 고통스러웠었고, 그것은 결국 자신이 아버지에게 그처럼 가치 없는 존재라는 의미도 된다는 중요한 말(해석)을 한다.

우선 키프카는 아버지의 거대한 체격만 봐도 압도당하였다. 아버지와 수영장에 갔을 때, 야위고 가냘픈 체격의 카프카는, 키 크고 건장하고 체격 좋은 아버지 모습을 보고 초라한 기분을 느꼈다고 하는데, 그런데, 그건 "아버지께 대해서만이 아니라 밖에 나가서 사회 전체에 대하여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라고, 그것은 곧 온 세상에 대한 느낌이었다고 말 한다.

그는 아버지를 “폭군적 기질, 폭군행세,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고는 가만 두지 않는 본성의 소유자” 등으로 표현한다.

“저는 아버지 앞에서는 자신감을 잃어버렸습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씀 드립니다만 저는 밖에서도 사람을 경계하는 소심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버지 의견만 맞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예외 없이 모두 틀렸고, 아버지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아버지로부터 심한 압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제가 조금만 뭐라 하면 욕설, 비방, 독설을 늘어놓으며 간섭을 하셨습니다... 아버지 앞에 나아가면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도 불가능 해졌습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대개 말을 더듬게 됩니다.”

카프카는 이렇게 압도당하고, 의견이 묵살 당하고, 존재가 말살 당하면서 성장하는 동안 반항적이고 증오심, 복수심 가득한 아이가 되었고, 어머니마저 아들을 위해 몰래 뭘 했다 하면 결과적으로 아버지와 진정한 화해를 방해하는 결과가 되고, 결국은 다시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눈치 보고 사기꾼이 되고, 죄인의 의식을 가지게 되고 반복 될수록 죄의식은 더욱 더 커진다. 또 다른 핵심감정⁴죄의식이 싹트고 싸이고 종국에는 아버지가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얼굴 붉히며 멜빵을 풀어서 의자에 거는 것을 보면, 교수형 당하는 장면을 연상하곤 한다. 아버지의 말씀인즉

“제가 태형을 당해 마땅한데 아버지의 자비로 겨우 모면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 번 거듭될수록 죄의식은 더더욱 깊어졌습니다. 저는 모든 면에서 아버지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저를 꾸짖으실 때는... 항상 공공연하게 공개적으로 하시고... 아버지 덕택으로 부족함 없이 안정되고 자유스럽게 풍족한 생활을 하며... 자신이 어렸을 때는 단칸방에서 자야 했다. 감자라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입을 옷도 부족했다. 집에서는 동전 한 푼 받지 않았다. 군대에 들어간 후에도 오히려 돈을 집으로 보냈다 등, 뇌리에 뚜렷이 새겨져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야말로 아버지의 고생의 결과로 만들어진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또 듣고 죄의식은 무서움만큼 그를 지배하게 된다. 즉 그가 평생토록 가장 많이 경험한 느낌(핵심감정)은 무서움과 죄의식이었다. 이 사실은 그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은 주게 되었다고 생각 된다.

그의 성장과정과 작품세계와의 관계는 추후에 자세히 한번 다룰 것이지만, 그가 어느 정도 독립을 누리고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글도 쓰고 그게 책으로 나와서 그 책을 아버지께 드렸을 때, 아버지는 그냥 인사치례로 “책상위에 놓아두어라” 라고 했던 것을 카프카가 기억하는 걸 보면, 카프카 나름대로 아버지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인정받고 싶은 기대가 있었던 거 같다. 편지 서두에서도 “사랑하는 아버지” 라는 말로 시작 하고, “아버지는 저를 물론 사랑하셨습니다.” 이런 말도 하는데 이것은 그냥 “말” 자체이고 그의 심리적, 정신적 상처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사랑이나 인정 받은 흔적이 별로 없다. 물론 이것은 카프카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이긴 하지만.

그는 아버지로부터 정신적으로 무시당하고, 존재가 묵살당한 데 대한 고통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고 있다.

“저는 엉덩이를 발로 짓밟힌 상태에서 윗몸으로 몸을 비틀어 빼면서 옆으로 기어 나오려 용을 쓰는 벌레를 연상케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벌레 취급을 당하는 것과 똑같은 느낌, 이 느낌이 그의 대표작인 벌레 의 소재가 되었을 법 하다. 벌레 뿐 아니라 심판, 시골의사, 단식 광대 등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어둡고 슬프고 불행하고 비참해서 읽고 났을 때, 무언가 생각게 하고, 무언지 모르지만 눈물을 자아내는 슬픈 작품들이다.

결국 그는 그러한 심적 고통이 몸으로 온 것을 깨닫는다. 그의 표현으로 무관심, 냉정하고, 솔직하고,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무관심, 어린애다운, 귀엽고, 우스꽝스러운... 자기만의 만족으로만 느끼는 무관심으로 일관 한 것은 불안과 죄의식으로 인해 생겨나는 신경장애에 대한 방어수단이었다는 말을 한다. 즉 고통스러워서 무관심해 버렸는데 주로 마음속으로 억압하거나, 회피 했다는 뜻이다. 그 억압은 드디어 증상들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저는 저 자신에게만 정신을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입니다. 이를 테면 건강에 대한 근심 걱정이 그것입니다. 그것은 저도 모르게 시작 되었습니다. 소화불량, 탈모, 척추만곡을 종종 걱정했습니다.... 여러 단계를 거쳐 차츰 심해지다가 마침내 진짜 병이 되어 버렸습니다... 허약 체질... 육체에 까지도 자신감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온갖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었습니다”

이른바 그는 신경증(노이로제) 증상들이 올라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건강 염려증이 시작되고 종국에는 우울신경증 앞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모든 일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항상 자신의 생존에 대한 새로운 확증이 필요 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의 최상급 반에 올라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최상급 반에 갈 수 있었고 상까지 받았습니다. 또한 김나지움의 입학시험에는 합격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공 했습니다. 또 김나지움에서는 틀림없이 낙제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낙제하지 않고 계속 진급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결과가 저에게 결코 확신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 반대였습니다. 사람을 아버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의 안색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잘 했는데도 당당하게 아버지 앞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것은 곧 사회에 대한 반응으로 복사판으로 일어난다.

“저같이 무능하고 세상에 둘도 없는 무지한 놈이 어떻게 이런 상급반까지 기어 올라올 수 있었는지 모든 사람들의 주의가 제게 쏠린 이상, 물론 곧 사람들은 저에게 침을 뱉을 것이고 이러한 악몽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다른 아이들은 일제히 환성을 지를 것입니다. 이런 망상을 품고 산다는 것은 어린아이에게는 견뎌내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업 같은 것이 제게 무슨 흥미가 있겠으며....”

이 표현은 거의 인간으로서 또는 그 또래의 남자로서 identity diffusion(confusion)까지 일어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김나지움의 속박을 받으면서 졸업도 겨우 했다고 말 하며 직업 선택의 자유도 없다고 느꼈고, 결국은 자신의 무관심을 적당히 허용해줄 직업을 찾는다는 것이 법률학이었고, 결국 그는 23 세라는 젊은 나이에 법학 박사를 받고 회사원으로서 가족 부양의 책임을 다하고 살 만큼 훌륭했다.

그런데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던 그가 결혼이라는 중대한 인생과업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 문제에 관한한 그는 아버지와 관계에서 가장 혹독한 모멸감을 경험하게 된다.

“...결혼에 대한 저의 의향을 말씀 드리자 매우 격앙 되셨던 아버지.... 그래도 어머니라도 기대 했지만 무엇인가 테이블 위에서 집어 들고 방을 나가셨습니다. 그 이상 심하게 저에게 말로써 자존심에 상처를 주신 일은 일찍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또 그때만큼 분명하게 저에 대한 경멸을 나타내신 일도 없었습니다. 20년 전에도 그 비슷한 말씀을 하셨지만... 첫출발을 시도했던 젊은이는 그대로 거기서 정지해버렸고... 한 처녀에 대한 저의 결정 따위는 아버지에게는 전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의 결단력을 무의식적으로 항상 억누르셨습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가하신 모욕은 저의 결혼 따위는 아버지 이름에 씌운 불명예를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매우 화를 내면서 결혼 반대를 하신데서 카프카는 결혼을 계기로 아버지로부터 탈출시도를 하려다가 또 한 번 심각한 좌절감과, 실망감, 모멸감을 경험하며 그의 아버지에 대한 반감의 클라이맥스는 이렇게 들어난다.

“그럼 결론적으로 왜 제가 결혼을 안 했을까요?... 저는 근본적인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명백히 정신적으로 결혼 무능력자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결혼 결심을 한 그 순간부터 이미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밤낮 할 것 없이 머리가 뜨거웠습니다. 그것은 이미 삶이 아닙니다. 저는 절망적으로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결혼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은 아니고 원래 저는 우울증인데다가... 수없이 많은 걱정이 따라다니고 있었으나 그 걱정들도 결코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고... 그것은 불안과 심약함과 자기경멸의 느낌에서 오는 총체적 강박 증세였습니다...”

“저의 결혼은 그야말로 아버지의 독무대로 막을 내렸습니다... 결혼에 대한 저의 욕구가 무력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자식들 간의 관계 속에서 비롯된 것들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을 눈으로 보면서 어찌 감히 제가 결혼할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아버지는 자신의 모범적 사례와 교육을 통해 저의 무능력을 납득 시키려 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을 이 편지에서 써 보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그는 끝까지 아버지에게 자기가 왜 아버지를 무서워하는지 설명 하면서, 무서워하는 원인은 아버지에게 있고, 아버지와 자식들과 관계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주장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했는지는 나타나는 게 없다. 말로는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는 저를 물론 사랑하셨습니다.” 라고는 하는데, 지금까지 이 책의 내용으로 보면, 아들을 사랑해주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장면은 한 장면도 나오지 않고, 나와도 진실한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거의 다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무서워서 기가 질리고, 긴장해서 할 말을 잊거나 생각도 안 나거나, 말을 더듬게 되거나, 자신감만 없어지는 그런 구체적인 설명만 있을 뿐이고, 아버지의 반응이나 행동은, 아들을 기를 죽이는 말, 깎아내리는 말, 욕설, 비난, 고함, 무시, 존재 말살 하는 것들뿐이다.

그 클라이맥스는 결혼문제에 도달해서다. 카프카는 지금까지 당한 것 중에 가장 큰 상처는 결혼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독재자 같은 아버지 앞에서 반항 한마디 못하고 오히려 경멸을 당했던 기억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저는 지금까지 아버지에 대한 저의 공포감이 어디에서 생겼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만 한번 훑어보신 후 이런 대답을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자기 생각 속의 아버지의 대답을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는데

“.... 이것만으로도 너는 만족하지 않고, 결국 철두철미하게 나를 집어삼키려고 하며 덤빌 것이며, 지금 우리는 싸우고 있는데... 독충의 싸움은 상대를 찔러 죽일 뿐 아니라... 재빨리 상대방의 피를 빨기도 한다. 이것이 본래의 용병이란 존재로서, 그것이 바로 너다. 너는 생활 무능력자인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하리라고 자기 생각 속에서 역시나 아버지의 결론은 카프카를 무시하고 말살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편지를 마무리 한다.

흔히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하는데, 그 시대의 카프카의 아버지는 철저하게 아들을 이긴 거 같다. 그 아버지는 기록으로 보아 아들이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까 그 이후까지도 살았던 거 같은데 출판된 이 편지를 읽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카프카는 훌륭한 청년이었다. 머리가 천재였을 거 같다. 아버지와 관계가 좋았더라면 밝고 건전한 천재적인 작품이 쏟아져 나왔을 거 같아 애처롭고도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본성이 착한 카프카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어 했고 엄청 노력도 해서 법학박사를 받고 가문을 빛냈음에도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거 같다. 아버지로부터의 소외는 사회로 부터의 소외, 인간들로부터의 소외로 복사판으로 이어져 그의 작품마다 위축되고 존재 확신 없음이 드러나고, 그래서 문학가들은 그를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라고 하는가보다. 그의 작품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몇 권속에서도, 왠지 그를 이해할 것 같고, 왜 문학계에서 그를 높이 평가하며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아버지는 도대체 왜 그렇게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고, 독재적이었을까? 물론 그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 문화, 유대인의 존재와 환경 등에 대해 다는 알지 못하지만, 오랜 세월 정신치료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독재자 아버지는 아주 약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독재와는 거리가 먼 아버지, 부드럽고, 민주적고 사랑이 많은 아버지들은 오히려 더 강하게 자녀들 인생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오래도록 좋은 결과로 남는다는 점이다.

부모란 존재는 아이들에게 마치도 하나님 비슷한 존재다. 온 세상과 같다. 그런 점들이 이 편지에서도 간간이 들어난다. 카프카는 자식들의 문제의 근원 (source) 은 아버지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아버지의 문제의 근원은 아버지의 윗대의 부모에게로, 조상 대대로 올라 갈 것이고, 카프카가 자녀를 낳았다면 미결된 문제는 대대로 내려갔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을 할 수 있다. 인간은 한계가 있는 존재, 유한하기가, 자신이 언제 인생이 끝날지 한 치 앞도 모르고 사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인간은 완전한 신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_________________

¹ 자료출처 : 프란츠 카프카(1883-1924) 저 박환덕 역.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종합출판 범우 (주) 2018

² 최근이란 카프카가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를 집필한 것이 1919년 이고 36세 때 니까 그 직전 어느 시기로 짐작됨

³ ‘핵심감정’ : 이동식 박사가 처음 명명하고 사용한 용어로서 (1961년) 그 의미는 자나 깨나 인간의 행동 일거수일투족에 나타나는 감정, 평생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이고, 의식일 수도 있으나 거의 무의식이다.

⁴핵심감정은 하나 이상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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