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부모와 자녀 관계
(Relationship Between Stepparent and stepchild)
계부모와 자녀 관계란 몹시 어려운 관계다. 그럼에도 우리 주위에는 많은 사례가 존재하고 부모 중 한쪽과 사별 또는 부모 이혼으로 해서 재혼 가정이 증가함에 따라 더욱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쪽 부모로서는 자녀 양육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부모 자신도 배우자 없이 홀로 산다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재혼하게 마련이고, 따라서 계부모에게서 양육되어야 하는 자녀와, 낳지 않은 자녀를 키워야 하는 부모, 이들은 계부모 자녀 관계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은 사례로, 어린 나이에 엄마와 사별 또는 부모 이혼으로 해서 엄마를 여의고, 어느 날 갑자기 새엄마와 만나는 사례다. 엄마란 존재(얼굴)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법인데,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고 그리움이 가득한데 앞으로 새엄마와 살아야 한다. 낯선 새엄마 인상, 서로 낯을 익혀야 하고 관계도 익혀야 하고 어쩔 줄 모르며 helpless한 상태에서 학교 다니며 사춘기를 겪고 성장하며 세월을 보내는 동안 엄마 없는 불행감을 느끼다 보면 기죽고, 주눅 들고 세상이 어둡게 느껴지고 항상 슬픔이 떠나지 않는다. 아빠는 밖의 생활을 많이 하고 있으니 얼굴 보기 힘들고 아빠가 새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더 많아지고, 아빠는 자식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아빠를 뺏긴 거 같기도 하고, 나에 대한 사랑은 있는지 없는지, 있어도 새엄마가 우선순위이고, 나는 훨씬 덜 사랑하는 거 같고, 아니 사랑하지 않는 거 같은 의심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속마음을 표현할 시간도 용기도 없어 털어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넣고 살다 보면 안에서 점점 자라서 커진다. 확신하게 된다. 아빠는 새엄마의 남편일 뿐이다, 라고
엄마는 하나님 같은 존재다. 그래서 엄마 없는 아이가 가장 측은한 것이다. 그런데 아빠가 엄마 역할 아빠 역할 둘 다 해주면 좋겠는데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새엄마 입장도 측은하긴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낳지 않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너무 혹독한 일인데, 남편과 관계도 적응해야 하고, 낳지 않은 아이들과도 적응해야 하고, 시집과의 관계 등 모든것을 챙겨야 하는 의무와 무거운 책임이 갑자기 주어진다. 자기가 낳은 아이처럼 자연스럽게 하기도 어렵고, 그렇게 노력해도 당하는 아이로선 그 어떤 선입견을 품고 대할 수도 있는 몹시 어려운 일이긴 마찬가지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가족 간에 갈등의 원인은 주로 사랑의 무게 때문이다. 아빠가 관심이 없는 거 같다는 것은 사랑의 부족함을 느낀다는 의미와 같다. 그런데 사랑에는 여러 가지 종류와 차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빠가 새엄마를 사랑하는 것과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사랑이다. 새엄마를 사랑하듯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대조적으로 아이를 사랑하듯이 새엄마를 사랑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엄마만 사랑하는 것 같아도 당연히 아이도 사랑하는 것이고 아이만 사랑하는 것 같아도 당연히 새엄마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 혼자만 느끼는 것이 있다. 약하고 기가 꺾여 있으니 아빠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고 새엄마만 사랑하는 것처럼 느낀다. 아빠는 마치도 고부간의 끼인 아들처럼 샌드위치 신세로 몰리게 된다. 그런데 이건 순전히 아이 느낌이다. 아빠 새엄마 사이의 사랑은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로맨틱한 사랑을 포함한 부부 사랑 가족 사랑 차원이고, 자녀에 대한 사랑은 끊을 수 없는 혈연적인 사랑, storge 의미의 가족 사랑 차원이다. 아빠 새엄마 간의 사랑은 자녀와는 나눌 수 없는 차원의 사랑과 신뢰가 있고, 아빠와 아이 간에 사랑엔 아빠 부부간에 나눌 수 없는 또 다른 사랑과 신뢰가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가족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전혀 차원이 다른 사랑으로 만나서 가족 사랑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새엄마 쪽이나 아이 쪽이나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들의 느낌이 문제인 것이다.
아빠가 엄마로부터 받는 이해, 사랑, 도움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많고 다양해서, 그 도움 없이는 아빠 자신이 스스로 지탱하기 힘들 수도 있다. 아빠 사랑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빠가 재혼해서 새엄마가 있다고 해서,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아빠는 이 세상에 없다. 결핍을 느낀다면 서로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아빠 편에서도 표현하고 확신을 주며 대화를 통해서, 아이가 이 세상에 안심하고 존재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면, 잘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고, 때가 이르면 아이 스스로 자기 앞의 인생을 마음 놓고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충만할 때 아이는 스스로 독립해서 훨훨 날 수 있을 것이다.